그곳의 날씨는 따뜻할까.
나 대신 내리쬐는 햇살은 당신 곁에 오래 머물다 갈까.
내가 없는 오후라도 눈부신 그곳에서
내 생각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하면 그대 모르게, 내가 조용히 행복하겠다.
- 너의 오후에, 박햇살
첨부된 음악과 함께 감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아침의 새소리, 나지막이 울리기 시작하는 시계의 알람소리. 어두운 밤을 지새우듯 조용하기만 했던 나의 아침이 떠올랐다. 여느 때처럼 아침을 알리는 모든 소리에 눈을 감고 옅은 잠을 보내었던 나는, 무겁기만 했던 눈꺼풀을 떠 보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어떤 균열도 없는 평소의 오늘이 찾아왔다는 것에 작은 응어리를 남긴 채, 몸을 일으켜보았으며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몸이 무거운 느낌에 살짝 기우뚱, 몸을 기울였다. 어째서였을까, 몸이 조금 안 좋았던 것이었을까? 잠시의 고민을 둔 상태로 한 걸음, 한 걸음 의미 없는 발걸음을 내디딘다. 기약을 나누었던 오늘은 합숙의 첫날이었기에 설레이는 마음이 가득 쌓여, 몸이 무겁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며 언제나처럼 그려 올린 미소로 나아간다.
이후로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단순하게 지나갔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소심하기만 했던 나는 쉽사리 도전을 내지 못한 채로 작은 도움을 받아, 해낼 뿐이었고 그런 성공에도 바보처럼 웃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선뜻 다가온 배려들은 참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주기에 충분했었다. 지어 올린 미소가 아니라,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미소가 올라왔을 정도였으니까. 그중에서도 색다른 기류를 흘러 보내주는 아이도 있었던 것 같았다. 마치 자신의 성공인 것처럼 기쁨을 나눠주었던 사람. 웃음이 잘 어울린다며 올곧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제 자신을 바라봐주었던 아이였다. 제 자신보다도 미소라는 긍정적인 감정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기에, 나는 자신을 얽매이는 흐름에 그만 얼굴을 숨겨버렸었다. 쑥스럽다는 감정들은 쉽사리 느끼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감정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과분한 것을 받아버렸을 때 자연스레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제 자신이 새로이 알게 된 감정이었기에 조금 더 자신을 숨겨버리며 더 나아가기를 거부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쉬웠다. 어찌 즐겁기만 한 시간들은 재빨리 끝나길 원하는 것인지. 순식간에 추억으로 남아버리며 없어지기만 하기에, 초조한 마음뿐이 자리를 잡았다. 잠시의 회의감에 빠져,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다는 것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추구하며 결론을 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다가온 그 아이는 어여쁘다 못해, 제 자신에게 따스한 위안을 주는 듯 선명하게 빛을 내어주었다. 어쩌다 공통점을 찾아낸 순간에는 날뛰는 행복에 아이가 된 느낌이었었다. 작디작은 것일 뿐이었지만 어째선지 설레는 마음도 다가오는 것 같았던 걸까, 또 한 번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에 앞서 얼굴을 가려버렸으며 불그스름하게 변해가는 제 얼굴과 귀 끝은 자각을 내리기 전까지도 이어지듯이 흘러갔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내려봤음에도 눈앞에 펼쳐진 새로이 핀 감정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도 새로웠기에 마치, 출구 없는 미로에서 하염없이 출구를 찾기 위해 우는 아이처럼.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왔었다. 이윽고 낸 결론은 알 수 없는 감정과 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 하나하나가 허무맹랑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떠 오르는 감정들은 지우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어째선지 눈을 감으면 그때의 향기가 자욱하게 낀 듯이 느껴졌으며 눈을 뜨면 펼쳐지는 풍경이 그때와도 같았기에,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감정이 제 안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즐거움의 끝은 다가온다. 정해진 시간은 점차 끝을 향해 달려갔다는 듯이 이윽고 멈춰 선 장소의 앞에는 기약되어 있던 줄 하나가 그어져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때였다. 그 기약의 선이 하염없이 길어져버린, 부정적인 시간이 시작이 되어버렸다. 나약한 제 마음을 감싸보자는 서툰 마음에 올린 미소들은 어째선지 눈앞에 그려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걱정스러움만 쌓이듯 이어갈 뿐이었으며 점차 자신을 잃어버린 제 자신을 보곤 제 안에서 흐르다 못해 넘쳐버리는 상실감만을 연신 숨길 뿐이었다. 자물쇠에 얽혀버린 오래된 밧줄처럼 쉽사리 없앨 수 없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가온 그 아이의 따스한 흐름은 어째선지, 부정적인 생각들에 불안하기만 한 제 속을 달래주기에 충분했었다. 걱정스러움 안에 녹아든 배려 때문이었을까? 서툰 목소리로 내었던 장난스러운 어조에도 결국, 지금껏 참아내었던 새하얀 웃음소리를 내었었다. 그런 밝음 아래, 내보여준 그 아이 모습 또한 새로이 알아갈 수 있는 흐름이었기에 족쇄 같이 느껴졌던 긍정적인 마음들이 부드러이 풀려, 앞을 조금 더 선명하게 끔 보이게 만들었다.
한때는 왠지 모를 불안함에 그 아이의 팔을 잡고 간절하게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가 무엇이라 매달릴 수 있었을까. 그저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올린 몇 글자만을 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게 답을 내어주었다. 약속이라는 한 단어, 단 두 글자의 따스함으로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했다. 잠시의 안정에 작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금 여유에 잡힌 미소를 올릴 수 있었다. …… 그 아이가 돌아오지 못한 그 시간의 이전인, 아주 잠시동안은 말이다.
어두울 뿐인 마음에 일그러진 표정을 지우고자 홀로 속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털어내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애가 탈 뿐인 마음을 속이며 뒤로 넘겨버린 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단조로운 자신감으로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 선다. 결국에는 그 무엇도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약하디 약한 한 사람이 되어, 돌아올 뿐이었지만 그 끝에 다다른 변화된 상황들이 제 발걸음을 나아가게 한 이유와 동일시되도록 만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시금 만났던 아이는 좋지 못한 안색이 가득했음에도 무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기만 한 제 자신을 배려하는 것인지. 그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은 미소를 그려 올렸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변함없이 올린 그것이 어찌 이토록 좋았을까? 이후 느껴지는 마음은 그게 아니라는 듯, 되려 깊은 걱정스러움이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으며 그 아이에게 솔직함을 토로했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을 투명하게 내비쳤다. 이윽고 일렁이는 눈을 내보이던 아이는 그때서야 진실을 내어주는 듯, 제 자신을 반듯하게 바라봐주었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허무할 뿐인 이 몸뚱이로 그 아이를 다 안아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내는 것도 아까운 시간이었기에 제게 내주었던 배려를 저 또한 내 보이리라. 그리 생각을 하며 그 아이 앞에 차분히 팔을 올려보았다.
와장창--!!!! 그때 좋지 않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며 제 귓속 안까지 파고드는 느낌을 주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칠 듯한, 기시감을 전해주는 그런 소리.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버린 제 몸은 두려움에 움직이지 못했던 마력의 흐름을 모두 내비치며 갈피조차 못 잡았던 제 마음을 꾹 눌러 담아, 떨려오는 제 손을 꽈악 쥐어보았다. 눈앞에 보인 두려움에 또 한 번 숨어버렸다가는 허무할 뿐인 제 행동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게 뻔했으니까.
… 아마 내 기억은 그 이후로 끊겨버린 것 같다. 두려움에, 한심함에 사로잡혀버린 어리석은 자신은 결국 도움 하나 되지 못한 채, 허공으로 떠 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되뇌었다.
___
홀로 남아버린 공간, 홀로 떠나버린 세계. 다시 눈을 떠버렸을 때에는 공허한 세계 속이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내듯이, 자물쇠의 얽매인 오래된 밧줄이 풀려버리듯이 울고 또 흘러 보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속이 뒤집히지 않는 현실이, 이곳은 끝이라는 듯 제게 깊은 공허함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었다.
" …… 정말 무모해요. "
몇 분이 지났을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제 자신을 전부 올려 보내지 못한 채 허공을 바라보다 낯익은 무언가를 보았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아이가 내 눈에 비쳐버렸기에 겨우 멈추었던 제 속의 서러움은 또 한 번 토해내는 듯 좋지 못한 얼굴을 내보였다. 체념을 한 것일까, 아니면 또 한 번 내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 아이는 또 내게 자신을 챙기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한 목소리를 내어주었다. 왠지 모를 싫증 나는 감정들. 영혼으로 변해버렸음에도 간절한 마음이 남아있었을까? 되려 찾아와 버린 그 아이에게 못된 말만을 내버렸다.
"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 그 어느 것도 내 말을 지킨 적이 없구나.
미안해…. "
그 아이는 내게 또 한 번 사과를 내민다. 자신도 아픔에 짓눌려 온 것임이 분명할 텐데도, 끝까지 다다랐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텐데도. 제 안위를 걱정하며 제 자신을 위한 목소리를 내어준다. 수많은 이야기를 끝으로 나는 결국 그 아이에게 마음을 놓아버리며 받아들였다. 그보다는 그 아이를 무어라 할 수 없었던 현실을 자각했다. 분명 변화되는 것에 극심한 거부감을 느끼며 살아왔을 텐데도 지금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다. 제 자신을 이해하고 제 자신을 배려하며 살아온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적어도 괴로우면 괴롭다, 아프면 아프다. 솔직한 감정을 내비친 적이 제대로 있었을까. 한계에 다다르지 않았더라면 숨겼을 모든 감정들이 이제는 속일 수도 없다는 듯 제 속을 어지럽히며 아이를 바라보는 눈가에서, 얼굴에서. 행동에서. 모든 것에서 일렁이듯이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후회였다. 어느 한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듯이, 어느 한 동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듯이 다가와버린 현실을 수긍하며 지금에서야 그 후회를 아이에게로 내보인다. 그리고는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그 아이를 원해보았다. 이후에는 분에 넘치는 소망을 제어할 생각이 없다는 듯 아이의 슬픔 또한 원했음에 차분히 토닥이며 이윽고 떨어져 버린 아이의 슬픔이 담긴 조각들에 일그러진 미소를 잠시 올려보았다. 이토록 가슴 아파할 것이면서 어찌 그리 속여왔던 건지. 이토록 울분에 터질듯한 마음이 있으면서도 어찌 그리 태연하게 행동했던 것인지.
" 웃으면서 눈물을 같이 흘리다니, 바보 같지? "
고개를 떨군 상태로 하염없이 맺히는 눈물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아이의 품으로 들어가듯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 보았다. 가늘어지게 접힌 눈은 살짝 휘어, 옅은 눈웃음을 만들어냈으며 일렁이는 눈가를 꾹 누르듯이 흐려지는 앞을 조금만 더 선명하게 펼치며 또 한 번 너를 올려다본다. 여느 때처럼. 아니, 여느 때보다도 연하게 떠오른 꽃잎처럼 때 묻지 않은 그런 새하얀 미소를 내보이며 슬픔을 토로하듯 나오는 네 눈물을 이해한다는 듯이 반듯하게 바라보았다.
" 바보 같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원했던 아인 씨의 모습이었어요.
… 있지요, 아인 씨. 그거 알아요? 사람이란 마음이나 그 무언가가 아프면 아플수록 쌓여가는 게 많은 법인만큼, 누구나 가슴속에서 삭이고 있는 눈물이 많다는 것을요. 그것을 내보인다는 건 타인에게는 신뢰의 증표라는 것으로 포장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자신이 안정되어 있는 상태라는 걸, 편안하다는 걸 뜻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모든 슬픔을 다 보여도 좋아요. 제가 원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소원할 것이니까.
… 제가 이토록 솔직하게 말을 낼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아인 씨 앞에만 서면 편해지는 마음에 무언가 홀린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게 돼요. 제게 무슨 짓이라도 하신 건지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같이 있는 순간들마다 불안함이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져만 가요.
이제는 추억만이 가능한 그때가 그리우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함께 했던 이가 아인 씨라서. … 후회를 두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지러운 감정만이 자리잡아요. "
손을 차분히 뻗어서는 닿는 거리의 네 눈가로. 서러움을 토하듯 나왔던 조각들을 조심스레 닦아주는 듯, 눈가를 어루만져보았으며 끝에는 네 뺨을 한번 쓸며 뒤로 한걸음 물러나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힘겹게 올려다보지 않은 편안한 시선을 위로 둔 채로 눈을 휘어접어, 미소를 올린다.
" … 아인 씨가 그랬었지요.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생을 기약으로, 라고. 저는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조금 지친 것 같아요. 적어도 알 수 없는 기약을 두기에는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가득한 마음뿐이 자리잡았어요. … 참으로 바보 같지요? 어리광을 조금 받아주셨을 뿐인데, 제가 이렇게나 고집부리는 아이로 변해버렸으니까.
저는요… 다시 이어질 수 있는 생이 아니라, 다시 이어지는 생을 기약으로 남기고 싶어요. 마주 잡았던 손이 언제 이어질지 모르는 것보다 다시 이어진다는 확신을 바라요. "
……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인 씨가 정말, 좋아요.
부디 다음에도 제게 그 따스한 미소를 보여주세요.